루마니아. 낯설지만, 어딘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다가온 나라였습니다. 브라쇼브의 고요한 언덕, 시비우의 돌길 골목, 그리고 드라큘라의 전설이 숨 쉬는 트란실바니아의 성들. 저는 이곳에서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과 사람들의 느긋한 미소 속에서 안정을 느꼈고, 그 감정을 간직하고 싶어서 기념품을 하나둘 고르기 시작했어요.
2025년 루마니아를 여행하며 만났던 아름다운 물건들. 그 안에는 단순한 상품 이상의 이야기와 감정이 담겨 있었습니다. 이 글에서는 감성, 실용성, 그리고 로컬 브랜드와 함께 가장 기억에 남았던 기념품들을 정리해 드릴게요.
루마니아 전통 자수 & 블라우스 (Ie)
브라쇼브 구시가지의 작은 상점 앞. 창문에 걸린 자수 블라우스 한 벌이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.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그 모습은 마치 오래전 기억 속 소녀의 옷 같았어요.
Ie (이에)는 루마니아 여성들이 수 세기 동안 전통적으로 입어온 자수 블라우스로, 보통 리넨이나 면으로 만들어지며, 지역마다 문양과 색상, 기법이 다릅니다. 트란실바니아에서는 붉은 꽃무늬가, 몰도바 지역에서는 검정과 파랑이 혼합된 문양이 흔하죠. 저는 특히 베이지 천에 진한 인디고색으로 수 놓인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구입하게 되었어요.
이 블라우스를 만드는 데에는 하루에서 길게는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고 해요. 한 땀 한 땀 손으로 수놓은 그 정성과 정교함은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했죠. 디자인뿐 아니라 자수에 담긴 의미도 인상 깊었습니다. 예를 들어 태양은 생명력과 여성성을, 꽃은 풍요와 사랑을 의미한다고 해요.
여행 중 마주친 한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어요. "이 옷은 단지 입는 것이 아니라, 우리 삶을 표현하는 거랍니다." 그 말을 듣고 나니, 옷이 아니라 한 편의 시를 손에 들고 있는 기분이었어요.
• 수공 자수 블라우스: 180~350 RON (한화 약 5만~10만 원)
• 간단한 자수 셔츠: 100~150 RON
• 린넨 스카프/머플러: 60~100 RON
Romanian Boutique, Artizanat Shop 같은 로컬 공방 추천.
자수 안쪽 마감 상태와 천의 재질을 꼭 만져보고 선택하세요.
루마니아 도자기 & 민속 공예품
트란실바니아의 산골마을, Horezu. 여긴 루마니아 도자기의 심장이었습니다. 흙먼지가 날리는 도로 옆, 작은 도자기 공방에서 한 장인이 컵을 빚고 있었어요. 그 손길은 아주 천천히, 아주 정성스럽게 움직였죠.
Horezu 도자기는 회색 점토를 구워 만든 후 녹색, 파랑, 갈색 등의 색을 입혀 독특한 무늬를 그려넣습니다. 그림은 주로 닭, 나선형, 나무 등 자연과 신화를 표현하며, 그 하나하나가 마치 민속화를 보는 듯했어요.
이외에도 루마니아에는 다양한 공예품이 있습니다. 자작나무 숟가락에 문양을 새긴 목공예품, 천연 밀랍초, 민속 문양이 들어간 컵받침과 인형까지. 그 중 짚으로 만든 전통 인형은 가볍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.
제가 샀던 건 작은 꽃무늬 머그컵과 민속문양 촛대였어요. 한국의 식탁에 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됐습니다. 그리고 무엇보다, 사용할 때마다 그곳의 공방 냄새와 햇살이 떠올랐죠.
• Horezu 머그잔: 60~100 RON
• 장식 접시 (중형): 150~200 RON
• 나무 수저세트: 40~80 RON
• 짚 인형, 밀랍초: 30~60 RON
공방에서는 카드 결제가 어려운 경우도 있으니 현금 지참 필수!
정품 인증 라벨(“Horezu Ceramics”)이 있는지 꼭 확인하세요.
루마니아 꿀술 (Medovina) & 허브 제품
브란 성 근처의 작은 주류 상점에서, 저는 처음으로 꿀술을 만났습니다. 병 너머로 보이는 황금빛 액체는 마치 늦가을 햇살을 담은 것 같았죠.
Medovina는 벌꿀을 발효시켜 만든 전통 리큐어로, 중세 시대에는 귀족들 사이에서 특별한 날에 마시는 술이었다고 해요. 요즘엔 과일 향, 시나몬, 바닐라, 허브 등 다양한 맛으로 나오고 있고, 차게 마셔도 좋지만 따뜻하게 데우면 향이 배가됩니다.
한 모금 마셨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운 단맛과 따뜻함은 루마니아 겨울의 벽난로 같은 감성을 줬어요. 함께 곁들이면 좋은 제품이 바로 허브차와 목욕 소금이에요.
Dacia Plant, Fares는 루마니아 대표 허브 제품 브랜드로 라벤더, 민트, 세이지 등 천연 블렌딩 제품을 다양하게 출시하고 있어요. 입욕 소금은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딱 좋고, 아로마 오일은 가벼운 선물용으로도 인기랍니다.
• 꿀술 Medovina (500ml): 40~70 RON
• Dacia Plant 허브차 (팩): 15~25 RON
• 입욕 허브 소금: 20~35 RON
• 에센셜 오일 세트: 45~80 RON
꿀술은 Carrefour 주류 코너나 와인 전문점, 허브 제품은 Plafar, Sensiblu 약국 체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요.
결론: 루마니아의 따뜻함을 담은 기억
돌아온 날 밤, 가방을 열고 하나씩 꺼내 놓은 기념품들.
부드러운 린넨 블라우스, 무게감 있는 도자기, 향긋한 꿀술의 병. 그 물건들 속엔 내가 보았던 풍경과 들었던 바람 소리, 그리고 말없이 눈을 마주쳤던 노부인의 미소까지 담겨 있었어요.
루마니아는 관광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나라입니다. 기념품도 그저 물건이 아니라, 그 감정을 집에 들여놓는 일이었어요. 2025년 루마니아를 여행하게 된다면, 단순히 예쁜 물건보다 마음에 닿는 물건을 선택해 보세요. 그것이 훗날, 당신의 삶 속에서 잔잔히 말을 걸어올 테니까요.